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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구수한 큰 맛’ dewydo0809@gmail.com 2021년 11월 30일

우현 고유섭(1905-1944)이 주장한 ‘구수함’과 ‘큰 맛’은 작가의 작품 제작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이 글을 통해 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수한 큰 맛’이 과연 지금의 시기와 더불어 NFT 미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써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인가.

 

1.

한국 최초의 미학자인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1)은 한국미를 정립한 인물(1905-1944), 그는 한국미를 다소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 ‘구수한 큰 맛으로 정의 내린 바 있다. ‘구수한 큰 맛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그는 한국 미술을 일상과 가까운 예술 분야인 공예의 측면에서 다루었기에 한국 미술=민예적인 것이 공식처럼 정립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그가 작성한 논문 중 하나인 조선 고미술의 특색과 전승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융복합 기술의 대중화와 더불어, 하나의 무언가로 정의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동시대 한국 미술에서 고유섭의 미술 사조는 고리타분하고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민예의 의미를 직역하면 백성의 예술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일상, 시민 그리고 사회까지... 사람과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예술과 예술가들이 NFT를 통해 일상 그리고 사람들과 가까이 하며, 자신만의 예술 활동과 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떠올렸다.

그렇다면 왜 구수한 큰 맛인 것인가. 동시대 미술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긴 하지만, 이전 예술보다도 두드러지는 특징인 참여 예술’, ‘공공예술에서의 공공성과 대중성이 있다. 앞서 민예적 측면에서 우리의 미술을 논한 구수한 큰 맛21세기 버전의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구수한 큰 맛(다할미디어, 2005)을 읽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상적으로 탐구하여 얻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요, 생활적으로 육체와 혈액을 통하여 얻은 커다란 성격의 하나이다.”생활과 생활의 연속에서 생활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는 본 책의 구절은 동시대 버전의 구수한 큰 맛이 예술의 사회성, 사회적 역할로써 예술과도 연결되는 지점들(특히 생활적인 육체와 혈액’, ‘생활과 함께 하는 운명이 그러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을 내포하고 있다. 고유섭이 주장한 구수함큰 맛은 그들의 작업과 작품(과정과 결과에 모두에 해당)에서 발생하는 것들(특징과 의의 그리고 영향력 등)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이 글2)을 통해 해 보고자 한다.

과연  지금 시기의 미술과 앞으로의 NFT 미술 발전에 있어 '구수한 큰 맛'의 개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2.

오늘날 작가들은 일상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이면들에 보다 집중하여 사회 현상에 대한 의문과 문제점 등의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으로 구현해 낸다. 이렇게 보면 작가가 하는 모든 과정들은 일종의 번역 행위이며 반대로 보는 이들에게 있어 감상은 해석의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오늘날 작품을 감상자들의 역할은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의 해석과 수동적 태도를 지양하고, 적극성을 요한다.(관객의 감상 행위 자체가 퍼포먼스의 역할을 수행함) ,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관객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작품의 완성에 있어서도 관객의 참여가 중요해졌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감상자의 생각의 폭 확장과 더불어 참여 범위가 확장되었다.

더불어 동시대 작가들의 예술 활동에 사회성과 공공성이 더해지게 되었는데, 필자는 이를 구수함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구수함은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사회 운동의 현장에 뛰어드는 자체가 작업 과정 혹은 작품이 되거나(퍼포먼스 형태의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한 성향의 작품들을 전시공간에서 펼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회성과 공공성은 참여 미술에서 두드러진다. 전시공간이 아닌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들은 다양한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진다. 그렇기에 전시장에서보다 더 다양한 반응들을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진행하고자 하는 주제나 작품 방향에 따라 참여 대상(시민 혹은 사회의 약자들(장애인, 노년층, 이주 노동자 등))이 제한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작업을 제작함에 있어 모든 과정을 예술가가 혼자의 의견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하며 그들과 대화하고 움직이며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 가는 행위에 의미 뿐 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육체와 혈액 또한 다른 의미와 역할들이 더해지게 될 것이다. 전시장(혹은 공공장소)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완성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또 다른 참여를 이끌어 내어 전시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작품의 상징성과 의미가 더욱 더 강조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구수함)을 통한 작업 과정과 그 결과로 발생되는 사회성과 공공성(큰 맛)은 감상자들에게 분노와 울림을 반복하며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구수한 큰 맛은 예술가들만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추상미술의 경우)에서 벗어나 현실이라는 삶에 접근하고 깨달음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써 역할이 가능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바로, 이목과 화제성을 위한 이용이다. 만약 이를 위해서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면, 고유섭이 말한 미술적 승화를 얻지 못하는’(필자는 이를 사회적 가치 획득에 해당된다 생각한다.)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텁텁하고 무디고 어리석고 지더리고 경계 흐리고......, 심하면 체면 없고 뱃심 검은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3.

사회성과 공공성이 대두되는 지금, 21세기 구수한 큰 맛’ 의 NFT 접목은 가능한 것일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앞으로 NFT 미술이 전개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현재 NFT 미술은 이 단계의 근처에 다다르지 못했다. 물론, 진입 단계이기에 구수한 큰 맛으로써의 NFT 역할 가능성의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성 전파와 더불어 이로운 측면에서의 NFT 미술로 나아감에 있어 구수한 큰 맛의 개념이 도움이 될 것이라 사려된다. 특히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둘 다 민()의 개념을 일정 부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수한 큰 맛이 민()의 개념을 담고 있다면, NFT 민들을 위한 예술의 적극성을 외치며 이를 전파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격에 해당된다. 아직까지 NFT 미술의 활용은 작가 자신의 홍보와 더불어 작품 판매에 집중된(기회가 없던 이들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매체가 현재로선 NFT가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제한된 활용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다.

필자는 현재의 제한된 활용을 넘어서는 것이 구수한 큰 맛의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NFT 미술에 한국성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도 큰 키를 쥐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이동의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보고, 듣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K-, K-드라마, K-영화 등 열풍 덕에 문화 강국으로써 한국의 위상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고유섭의 개념을 적용, 발전시켜 NFT 미술의 한국성을 담아낼 수 있다고 사려 된다. 그렇다면 미술에 있어서의 K-NFT 등장 할 가능성 또한 있을 수 있다. 고유섭이 살고 있던 시대의 한국성과는 180도 변했지만, 오늘날의 미술이 일상 속 이면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부에서 생각지도 못한 한국적 요소들이 등장할 수 있다고 필자는 본다.(예를 들어 샤머니즘 요소, 고전적 요소)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한국적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에 있어서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접근 방식보다 대상(사회와 약자)의 공감과 함께 그들과의 반복적인 소통과 교류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 K 열풍의 주역인 넷플릭스 드라마와 영화(오징어 게임, 지옥)들을 보면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그동안 추구한 K-컬쳐와는 다른 결로 한국적 요소를 담아낸 것은 좋지만,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선 자극적인 요소들(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종종 있다)로 범벅되어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NFT 만큼은 위와 같은 접근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한다. 아직 미지의 세계인 만큼 NFT의 한국성을 담아냄에 있어 무궁무진함과 그에 거는 기대는 크다. 많은 이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어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현재의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살기 좋은 사회’,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NFT 미술이 일조할 수 있길 바란다.

 

 

 

1)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221944625)은 일제강점기의 미술사학자로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인물이자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조선 미술을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학문화한 학자였다. 이는 그 당시 왜곡된 한국 미술을 바로잡기 위한 일환으로 그는 불모지와 같았던 미술사학을 체계화하고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일생의 목표를 근대적인 미술사 방법론에 의거한 조선미술사의 집필로 삼아, 회화, 건축, 조각, 공예 등 다방면적으로 수많은 글들을 남겼다.

2) 본 원고는 필자가 2020년에 작성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서 본 구수한 큰 맛원고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한 원고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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