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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기술의 불행한 수용 dbrua3891 2021년 11월 29일

우리에게 찾아온 NFT아트에 대해 개념적으로 고찰하는 시도이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발터벤야민이 말한 '기술의 불행한 수용'과 관련하여 예술이 NFT를 어떻게 수용해야할지 고민해보도록 한다.

 

NFT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예술 개념으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제시한 ‘아우라’가 있다.  20세기 독일 사회의 철학자였던 벤야민이 영화나 사진과 같이 복제되는 예술 형식을 예로 들며 기술 재생산 시대의 ‘아우라의 붕괴’를 천명하였지만, 21세기에 이르러 NFT라는 블록체인 기술이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편되던 디지털 아트의 원본성, 고유성, 즉 ‘아우라’를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NFT의 성격을 매우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설명이다. 다만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NFT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나름 탐구해보기 시작한 올해 4월 즈음에 비해 최근에 느꼈던 점은 NFT에 대한 대화의 서문에서 ‘NFT가 당최 무엇이냐?’ 하는 원론적인 설명이 점차 생략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껏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이 NFT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이해를 도왔으니, 그의 입을 다시금 빌려 2021년에 블록체인에서 비롯된 새로운 예술 형태, ‘NFT 아트’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지 얘기해볼 차례이다.

 


 

벤야민도 우리와 같이 산업혁명 이후 기술복제시대의 급변하는 예술세계를 목도하던 시기에 살았다. 그러한 변화에서 벤야민이 중요하게 한 얘기가 있는데, ‘예술 주체에 의한 기술의 올바른 사용’ 또는 ‘능동적 사용’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자. 블록체인, NFT, 그리고 메타버스로 인해 급변하는 예술세계를 목도하고 있는 2021년의 우리에게도 괜찮은 힌트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세기 독일의 파시즘 체제 아래서 ‘아웃사이더 좌파’를 자처했던 벤야민이었기에, 그가 강조한 ‘기술의 능동적 사용’의 궁극적 목적은 박물관적 예술, 부르주아의 향유물이던 경배적 공간에서의 예술이 아닌 영화나 사진과 같은 기술을 통해 널리 복제되고 보급되는 민중예술의 부흥을 위한 조언이었다. 태생적으로 복제되는 성질을 가진 디지털 아트 조차 ‘아우라’를 부여하는 NFT를 고찰하는 데 있어 그의 사상을 빌리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벤야민이 살아있었다면 NFT에 사뭇 날 선 입장을 취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발터 벤야민은 작금에 우리가 NFT라는 기술 혁신을 수용하는 데, 더욱이 이 기술을 어떻게 예술에 적용해야 할지 여전히 아주 훌륭한 힌트를 건네주고 있다. 

 

책의 핵심주체가 예술과 기술의 관계인 <파사젠 바르크(Passagen Werk)>에서 벤야민은 “19세기 사진이 미술에 미친 영향, 공학이 건축에 미친 영향, 대중 저널리즘이 문학 생산에 미친 영향” 등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경우 우리는 ‘NFT가 예술에 미친 영향’을 염두해 둘 수 있겠다.

 

19세기에 들어 재료는 새로운 기술 공학적 산물이었음에도 형식과 내용은 예전의 예술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벤야민은 지적한다. 즉 재료는 새로운 것이나, 형식은 고딕적인 형식을 띤 건축물들을 만들었으며, 철을 사용한 유겐트 양식 또한 형식과 내용은 주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한편 초기 사진에서 사진이 점점 ‘그림’을 닮아가려는 현상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엿볼 수 있는데, 즉 그림은 ‘사진 같은 그림’이 되고 사진은 ‘그림 같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사진을 현상할 때도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애를 썼다. 예술 영역에서 이렇게 기술이 수용되는 현상, 즉 기술에 상응하지 못하는 예술의 등장과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예술가 의식 등을 벤야민은 “기술의 불행한 수용”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벤야민은 철근 구조물인 프랑스의 에펠탑, 두 개 이상의 사진 조각을 재조합하는 합성 이미지인 포토몽타주 그리고 영화를 기술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에 가장 적합한 예술 형식이며,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놀이공간이라고 평가한다.

 

 

 

-한나 회흐, <독일 최후의 바이마르 시대를 다다의 부엌칼로 잘라버려라>

 

-존 하트필드, <슈퍼맨 아돌프 히틀러는 금을 삼키더니 쓰레기를 내뱉는다>

 

벤야민이 왜 기술복제시대의 이상적인 예술형식 중 하나로 포토몽타주를 꼽았는가. 사진이라는 재료가 최대한으로 드러나는, 사진이 가진 성격이자 복제 기술의 핵심인 편집·변형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형식인 까닭이 아니었을까. 즉 벤야민이 보기에 새로운 복제 기술인 사진을 재편집, 변형하여 새로운 맥락과 내용을 도출해내는 포토몽타주야말로 ‘그림 같은 사진’이 아닌 사진이 가장 사진답게 존재할 수 형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NFT라는 재료로 어떠한 새로운 예술, 새로운 놀이공간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NFT라는 기술의 핵심이 무엇일까? 이 기술의 핵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장 ‘NFT다운’ NFT 예술 형식은 무엇일까? 따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선제될 필요가 있다. 

 

   여러 맥락에서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NFT(Non-fungible Token)이라는 용어에서 ‘Non-fungible’을 뜯어보자. NFT의 핵심은 단순히 ‘대체불가능성’일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체불가능성’이라는 고정된 성질의 개념으로 NFT의 핵심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NFT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대체불가능한 것들은 물리적 공간에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원화 미술작품과 같이 대체불가능한 성질은 이미 존재하는 까닭에 NFT의 핵심을 ‘대체불가능성’이라고 간단히 대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NFT가 디지털 아트에 원본성을 부여해주고 거래 가능하게 함으로써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을 확장시켰고, NFT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것도 실체가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아닌 디지털로 구성된 온라인 공간에서 존재하는 기술이므로 오로지 디지털에서 태동한 예술 형식이 가장 NFT다운 것일까? 그렇다면 디지털 아트의 정수로 꼽히는 ‘제너러티브 아트’가 NFT를 진정하게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만드는 예술 형식일 수 있을 것일까? 프로그래밍 코드로부터 우연성으로 발현되고, AI가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는 이미지보다 예술적인 소프트웨어의 수용을 잘 보여주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1. 중단 — Vera Molnár, 1968  /  2. Schotter (Gravel) — Georg Nees, 1968

 

 그러나 제너러티브 아트도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트의 정수일 수는 있어도 NFT아트의 정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NFT라는 블록체인 기술이 없더라도 제너러티브 아트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이전에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로서 이미 제너러티브 아트는 존재해왔고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NFT는 그 자체로 예술과는 무관한 블록체인 기술이기 때문에 예술의 내적 구성 안에서 그 본질을 찾는 것부터가 잘못된 출발점일 수 도있다. NFT 기술 자체는 우리가 '디지털 아트'라고 인식하는 이미지 파일에 접근 가능한 링크, 소유자 ID 등의 메타데이터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온체인하는 블록체인에서 파생된 기술에 불과하다. 즉 NFT가 디지털 아트의 소유권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예술작품의 보조 수단 장치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NFT는 애초에 예술의 내적 구성과는 전혀 무관하고 작품을 판매한 원작자와 구매자의 수익구조와 관련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예술'이 아닌 '구조'와 관계된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지금으로써는 NFT가 오프라인 공간, 현실사회의 예술계에 국한되던 아티스트들의 예술활동을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가치를 보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야 막 실험을 시작한 NFT라는 예술공간에서 NFT가 '기술의 불행한 수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민이 중요할 수 있다. 또한 NFT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쏟아져 나올 새로운 기술에 대해 예술이 어떻게 대처하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흥미진진한 고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Gyeom

dbrua3891@naver.com

https://brunch.co.kr/@dbrua3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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