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

NFT에 대한 비판과 우려, 그리고 이에 대한 개인적 소고 indrapinnata@naver.com 2021년 11월 22일

NFT는 정말 사기일까? NFT는 미술계의 환경을 대체하거나 바꿀 수 있을까?

 

『주변에서 자꾸 NFT 이야기를 한다. 손자 말이,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라고 하던데, 토큰은 몰라도 대체불가능한이라는 말의 의미는 안다.

내 그림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사진을 찍어 만든 디지털 이미지가 대체불가능한것이라는 이름으로 고가에 팔리며 내 그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내 그림 자체가 대체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오프라인 세상의 사람이고, 물질 세계에 속해있다. 내 작품 역시 이 시대와 지평의 산물이다. 물감과 붓과 캔버스가 내 예술 세계의 미디움이다. 나는 그 속에서 호흡하며 내 시대를 충실히 살아왔다. 내가 알지 못하고, 나한테 오지 않은 시대까지 넘볼 생각이 없다. 디지털 예술은 새로운 세대의 것이다.

 

내 작품을 디지털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상세계의 어느 공간에 내 작품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작품 이미지를 NFT라는 이름의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다. 내 작품이 디지털의 형식으로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021년 1111일자 박서보 화백 페이스북 포스팅 전문

 

 

얼마 전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박서보 작가의 목소리가 공유되었고 주류 미술인들의 좋아요가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NFT는 예술시장의 가상화폐로 기능하고 있지만, 주류 미술계는 NFT를 그간 아방가르드의 역사가 지켜온 참다운 작가정신에 기반한 미술작업과 지지기반이 되어온 미술관, 상업 갤러리의 시스템과는 별개로 비미술인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기행위이거나 경멸적 의미의 하위예술, 변방예술의 꼬리표를 달아 미술사에서 간단하게 삭제한다. 연일 뉴스를 달구는 것과 대조적으로 국공립 미술관이나 주류 미술현장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하버드대 미술사 교수 데이비드 조슬릿은 OCTOBER 175호에 실린 글 NFTs, or The Readymade Reversed에서 현대미술이 형식적 물질성과 이에 내포된 의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발전해왔으며, 이를 뒤샹의 레디메이드 전략에 비유한다. 뒤샹의 변기와 워홀의 브릴로 조각이 이룩한 성취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예술과 상품의 범주를 뒤섞었다는 사실이며, 그리하여 개념예술이 예술의 물질성을 언어로 번역하고 개념예술가들이 역동적으로 펼쳐 온 다매체 작업 내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NFT는 유구한 예술의 역사로부터 단지 예술의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새로운 자산 클래스(Asset class; ‘자산군이라고도 불리며 동일한 속성을 지니며 시장에서 비슷하게 움직이고, 동일한 법에 근거하는 증권들의 집합체를 말한다.)를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플의 경우를 상기시켜보자. 비플이 크리스티 경매사를 통해 단숨에 제프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뒤를 잇는 작가로 부상되고 이를 언론이 보도한다. 논란의 구매자는 NFT의 가장 큰 사모펀드인 메타퍼스(Metapurse)의 대표였다. 실제 건축가들과 협업하여 가상공간에 비플의 뮤지엄 b.20를 설립했다. 작가와 경매사와 언론사, 펀드사 간의 일련의 결탁은 결론적으로 NFT 시장 전체를 부상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최초 진입작가인 비플 외에도 NFT 아트가 향후에도 꾸준히 팔려 메타버스가 실제 세계의 갤러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일까

NFT 아트는 실물이 없는 디지털 파일이지만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원본성을 가진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예술상품을 내가 가지고 싶은지의 여부다. 희소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며 소유욕도 상승한다.

기존 디지털 아트는 원본을 찾을 수 없는 복제의 복제를 특징으로 한다. 움짤, 밈과 같은 이미지들은 사용자들이 필요한 이미지를 채집하고 대중문화의 코드를 적당히 변형하는 가공과정을 거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무상으로 공개하며 수많은 사용자들이 이를 다시 재창작하거나 그대로 유통시키며 가치가 생긴다. 해당 이미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스크랩되었는지는 그 이미지가 갖는 문화적 가치를 증명한다.

 

반대로 NFT 아트는 하나밖에 없는 원본/진본을 보증하며 고급예술세계의 룰을 모방한다. 복제할 수 없으며 반드시 가상 플랫폼의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IT 문명의 혜택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20, 30대가 주 생산자이자 주 고객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품 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의 연령층이 40~60대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메타버스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높은 금액으로 팔렸다는 NFT 작품을 구경하는 것도 결코 쉬운일이 아니며 물리적 세계에서의 미술은행이나 작품대여를 통한 전시 행사와 달리 메타버스 내에서 NFT 작품이 전시를 통해 유통되는 것도 몹시 제한적이다. NFT 아트는 결국 어떻게 얼마나 더 많은 사용자를 메타버스로 끌어들일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은 언제나 후원기업 또는 자금력 있는 단체나 기관의 뒷배를 필요로 하면서도 일반 관객들을 교육프로그램의 사용자로 이양 축소시키고 주류 미술계라는 자기회귀적 사용자를 중심으로 추동해 왔다.

만약 가상화폐 시장을 통해 NFT 아트의 사용자 층이 전 일반에 확대되고 사용자층이 늘어나는 과제가 해결된다면 소비자 취향 중심의 구매가 이루어지는 NFT는 실제 예술세계가 구동되는 견고한 권위와 원리가 해체되고 메타버스 내에 벽에 걸린 가상의 이미지가 실제의 회화 대체하여 특정한 사물(specific object)로서 가격을 갖게 될 것이다.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
Other Post
  • 관련 포스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