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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하는 몸 indrapinnata@naver.com 2021년 10월 15일

집은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내피에 반영하는 개인적 미시사의 기록이자 존재 자체의 양식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을 갖지 못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임시거처인 일터와 주거가 혼용된 공간인 집을 떠나면 삶의 역사가 사라진다.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텅 빈 공간에 자신의 흔적을 매김하는 의식은 비닐 구체에 투영된 그림자만큼이나 투명하고 연약하지만 동시에 질긴 음영으로 자신의 존재를 반추한다. 디지털 사진이 보여주는 정지된 포즈 파편들의 궤적은 집단의 표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로 연결된 희미한 궤적 속에서 궤적을 만드는 개별적인 포즈들은 오히러 가려지고 모호하게 처리된다. 어쩌면 그와 같은. 떠나는 장소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는 자들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사회문화적 논의에서 집은 가족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주거하는 본래적 기능보다는 투자나 투기를 위한 재화로서의 가치가 부각된다. 이에 배제된 이들은 불안정한 정주와 그들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견고한 체계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personal space,2020>
 
김정수의 작업의 토대가 된 장소는 한 개인의 터전인 집이자 그리고 한 작가의 작업실로 중층적 기능을 한다. <personal space> 연작 은 그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작업은 사적 생활을 증거하는 모든 짐들이 소거된 이후 텅빈 장소를 방명록 삼아 남기는 작가의 마지막 작별의식이자 시그니처와도 같다. 현대의 사회문화적 논의에서 집은 가족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주거하는 본래적 기능보다는 투자나 투기를 위한 재화로서의 가치가 부각된다. 이에 배제된 이들은 불안정한 정주와 그들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견고한 체계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역설적으로, 한곳에 머무르지 않음으로서 개별적 삶의 새로운 양식들이 구축되기도 한다.
  집은 그 자체로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내피에 반영하는 개인적 미시사의 기록이자 존재 자체의 양식인 환경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을 갖지 못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임시거처인 일터와 주거가 혼용된 공간인 집을 떠나면 삶의 역사가 사라진다.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텅 빈 공간에 자신의 흔적을 매김하는 의식은 비닐 구체에 투영된 그림자만큼이나 투명하고 연약하지만 동시에 질긴 음영으로 자신의 존재를 반추한다. 디지털 사진이 보여주는 정지된 포즈 파편들의 궤적은 집단의 표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로 연결된 희미한 궤적 속에서 궤적을 만드는 개별적인 포즈들은 오히러 가려지고 모호하게 처리된다. 어쩌면 그와 같은. 떠나는 장소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는 자들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Indivisual space monstra,2020>
작가의 또 다른 작품 <indivisual space monstra>에서는 그가 키우는 반려식물들이 등장한다. 3D 프린트로 제작된 불()완전한 형태의 조형물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작가 자신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식물들은 비닐 구체 표면에 박제된 그림자인 과거가 아니며 각각의 장소를 지키며 견고한 외형틀로부터 틈 사이를 비집고 현재의 시간을 뻗어나간다. 흐르는 물 위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시간과 속도로 살아나가는 개별 개체들의 군집은 온라인 상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사회의 은유이기도 하다.
  집이 몸 바깥의 외부적 장소였다면 신체는 일상적인 동적 장소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들을 실루엣들로 연결한 그림자는 반투명의 원형 구체 안에서 고립된 존재로 보이나 매 시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존을 구현했던 작가는, 반려식물을 통해 다시 현재의 삶과 현재의 우리를 이야기한다. 인터넷의 속도와 함께 격동하는 흐름 속에서도 실제적 삶은 수조 위 물처럼 관조적인 방식으로 이어진다.  장소를 점유하는 동시에 매번 장소를 확장해나가는 식물은 어쩌면 현재 우리가 스스로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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