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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슬 작가론 indrapinnata@naver.com 2021년 12월 13일

"비현실적인 인식과 흩어진 기억들은 가상과 현실의 혼재로서 내게 나타난다." - 김다슬

 

김다슬은 국내에서 자주 전시를 하거나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는 작가를 나는 작년 초 오픈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때 마침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준비중이었고, 어쩌면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렇더라도 공간 정도는 대관료 없이 해결할 수 있으니 나머지 비용을 각자 부담하더라도 함께 무언가 작은 결과물을 만들 의지를 가진 작가들을 찾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릴 수 없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어 작가들이 모이는 오픈 채팅방을 찾았고 다들 자신의 전시를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곳에서 김다슬을 만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포폴을 보냈고, 나는 김다슬의 인상깊은 3d 디지털 영상과 AR 에세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독백을 늘어놓는 AR에세이에 특히 끌렸다.

코로나 시대에만 가능한, ‘지금,여기에 걸맞는 자동기술법 에세이의 가장 적확한 형식을 찾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찍의 굴레는 AR 에세이 이후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는 가상 에세지 형식의 김다슬의 신작이며, 모바일 웹에서 구동되는 마우스 반응형 3d 디지털 이미지가 첨부된 시적 에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문장은 매우 짧으며 감정이 거의 소거된 스토리는 파편적이고 이어지지 않는다.

 화면에 접속하는 순간, 나는 죽었습니다! 는 첫 문장으로 쥐를 소개한다.

쥐 소리를 들은 것 같다. / 쥐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마치 죽은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살기나 해요? 지하실에서 쥐를 본날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실험실의 하얀 쥐는 삶을 자극한다. / 쥐는 생쥐와는 다르다.

생쥐는 그냥 생쥐지만 쥐는 당신에게 물을 가져다 준다.

쥐는 반쯤 살아있는 것이다.

 

! (!하고 우는 것은, 사람에게 밟혀 더 이상 찍찍거리지 못할 때의 비명이라고 한다. 이부분에서 작가의 블랙유머가 드러난다.)

 

그리고 납작하게 눌린 쥐의 형체.

 쥐는 스스로 말한다. “인간 세계에서 나는 인간들이 하수구에 흘리는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살아왔어요. 그리고 지금 유선 세계에서 가상의 존재를 관찰하고 돌보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가상의 일반존재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드러난다.

  '물에 일렁이는 우리의 환영은 아주 가볍게 반사되기 때문에 왜곡되어 보인다.

물에 비친 텅빈 나의 눈은 기계처럼 일하는 노동자의 눈이고 그 순간 그는 나고, 너고, 납작한 쥐가 되고바라보는/대상화된 대상(쥐)과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니터의 납작한 표면에 박피된  대상으로 이입된다이는 가상과 현실의 관계로 곧바로 은유되며, 보는주체와 보이는대상간의 관계이기도 하다. 작가가 다음 장면에서 제시한 것은 얇게  층층이 쌓인 자신의 형상이다.

시간성의 개념을 주축으로 두고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정립하자면, 먼저 가상을 보기 전의 현실이 선행하고 그 후 우리는 현실세계를 통해서 가상세계를 들여다보고 가상세계의 모습을 현실로 산입시킨다. 이는 동시발생적이 아니며 인식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시차는 가상과 현실을 분리한다. 공간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상세계는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고 해석불가능한 새로운 경험체로 구축된다. 이는 동시발생적이며 인간은 가상환경안에서 하나의 오브젝트, 보여지고 드러나는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가상세계의 이러한 특성들을 고려하여 어떠한 구조틀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야 할까? 가장 우선적으로는, 가상세계에 대한 가시적 시각물에는 사용자의 상호작용 경험이 어떻게 디자인 되어야할지를 고려해야한다. 상호작용적 행태가 어떻게 유발되고 사용자의 욕구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일지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철저히 고려되어야한다. 조형성을 중심으로 둔 물리적 공간구축과는 달리 가상공간의 구축은 인간의 인지와 행태에 대한 이해가 중심이 되는 디자인 프로세스가 필요할 것이다.

작가가 주체와 대상을 동위에 위치시키기 위해 제시한 상징물 밟혀서 납작해진 쥐를 통해 우리는 뉴미디어아트의 영역에서 형식이 단순한 장식적 스펙타클 디자인이 아니라 인지심리를 결정짓는 특수한 환경조건임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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